물고기가 하늘에 떠다닌데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습기 많은 날에 남한산성에 다녀왔습니다.
비 소식이 계속이라 조금 걱정했지만 다행히 흐리기만 하고 비는 없는 일요일 아침입니다.
쓰던 글을 잠시 멈추고 구석에 놓여있던 카메라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섰습니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습니다.
남한산성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습니다. 김 훈의 소설을 바탕으로 했던 동명의 영화도 본 적이 없구요. 이 계절의 산은 색이 예쁘지 않아서 촬영할 게 있을까 걱정입니다. 습기로 인해 안개도 가득한 상황이라 시야도 좋지 않습니다. 그러고보니 사진 촬영에 안 좋은 조건들은 다 갖추고 있네요. 정보도 없고 여건도 도움이 되질 않고.
시간에 맞춰서 남문 주차장에 도착하니 만나기로 한 빈센트님은 도착해 있습니다. 의리없이 아침 먹고 왔다 길래 한 번 째려주고 나서 편의점 라면으로 허기를 메꿉니다. 굳이 삼각대를 메고 가겠다는 걸, 너무 더우니 장비는 줄이자고 설득해서 차로 보냅니다. 이른 아침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보입니다.
남한산성 종로로터리를 출발해서 북문과 서문을 거쳐 남문으로 돌아 내려오는 1코스를 선택합니다. 소요시간은 80분이라고 설명되어 있지만 사진을 찍다보면 세 시간은 너끈합니다. 예상대로 산은 짙은 녹색으로 뒤덮여 예쁜 구석이 없습니다. 날씨 탓에 내려다보는 도시도 흐릿하게 물속에 있는 것 같습니다.
평이한 코스라고 설명되어 있지만 눈이 따가울 정도로 흐르는 땀에, 내가 왜 이 더운 여름날 사진을 찍자고 한 건지 후회됩니다. 너무 더우니까 집중해서 주변을 살필 겨를도 없습니다. 이건 출사가 아니라 트레킹입니다.
계속 오르막입니다. 여러 번 와봤다는 빈센트님의 안내로 ‘여기가 아닌가 봅니다’를 되풀이하며 계속 오릅니다. 높이 오르니 그나마 시원한 바람이 불어 세상 다 가진 듯 시원합니다. 성곽 아래로 서울 시내가 보일까 해서 내려다보니 흐릿한 도시가 떠다닙니다.
산성으로 오르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땀도 식힌 우리는 수어장대와 행궁을 들리기로 하고 내려갑니다. 카메라는 이미 짐이 되어 버린 지 오랩니다. 빈센트님이 빌려 준 손수건으로 흐르는 땀을 견뎌냅니다.
행궁 입장 시간이 20분 정도 남아 있어서 편의점으로 향합니다. 역시 여름에는 ‘아아’가 최곱니다. 원 샷으로 지끈거리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행궁으로 향합니다. 부녀지간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정문을 지나가는 틈을 노려 셔터를 누릅니다.
좁은 공간에 건물을 참 많이도 만들어 놨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란의 와중에도 갖출 건 다 갖췄나 봅니다(삼국시대부터 지어진 행궁을 축조한 것이라는 설명이 있습니다).
행궁을 빠르게 둘러보고 나오니 이제 슬슬 배가 고파집니다. 산채정식과 숯불불고기를 하는 집으로 들어갑니다. 더위에 지쳐서인지 시원한 물만 몇 컵 들이킵니다. 역시 여름에는 사진 생활은 자제해야겠습니다. 맛있는 밥값을 계산하신 빈센트님께 감사드리고 각자 차에 오릅니다. 아직 12시 전이라서 그런지 올라오는 차들이 많습니다. '나는 벌써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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